2018년 2월, 제 15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부문, 최우수 포크 음반 부문, 그리고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까지 수상해 3관왕을 차지한 뮤지션이 있다.
‘강태구’는 첫 정규 앨범 [blue]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시상식이 열린 지 이틀째에
과거 강태구의 연인이 강태구로부터 데이트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공론화했다.
한국대중 음악상 선정위원회는 이에 대해 ‘현재 대중음악계 내에 존재하는 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및 폭력 문제에 대해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밝히는 입장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위원회 측은 결국 강태구의 수상을 취소하지 않았고, 강태구는 여전히 제 15회 한국대중음악상 수상자로 남았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은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짓지 않고 멜론뮤직어워드, 골든디스크와 같은 화려한 시상식에서는 볼 수 없는 뮤지션들이 평론가들의 심사 결과로 수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다. 따라서 무게감이 있는 시상식인데다가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짓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으나 다수의 수상 앨범 및 아티스트가 해당되는 범주가 인디 음악이므로 비주류 아티스트들의 메시지와 그들의 음악성을 편견없이 평가하는 유일한 음악 시상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소수자 인권이나 여성 혐오에 대한 문제를 의식했을 것이고, 2018 년 2월은 이미 여성 혐오라는 이슈에 대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을 때이므로 시상식 측도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을 신속하게 밝혔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시상식에서조차 적극적으로 수상 취소와 같은 행동을 이어나가지 못한 상황은 음악산업 구조 내에서의 성적 불평등이 만연한 구조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진다.
2018년 6월을 기준으로 아이돌 멤버의 여성 혐오적 발언이나 가사, 그리고 유명 연예인의 성범죄는 뉴스에만 나와준다면 쉽게 수면 위로 올릴 수 있는 문제가 되었지만 사실상 유명세 가 덜한 인디 음악계에 존재하는 성적 불평등 구조와 여성 혐오 문제들은 여전히 공론화 시키기가 어렵고, 공론화를 시킨다 해도 그 이슈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인디 신이 아니어도 직업 앞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젠더 의식의 부재는 전반적으로 모든 분야에 깔려있다. 그러나 따로 예시를 들지 않아도 성이 ‘남성’인 뮤지션들을 남성 뮤지션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왜 성이 ‘여성’인 뮤지션들의 수식어는 언제나 ‘여성’이며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이 강조되는지에 대해 한 번이라도 의구심을 품어봤다면 독립 음악 산업 구조 속에서 소비되는 여성의 이미지가 여성 뮤지션들을 어떻게 평가해왔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인디 신의 부족한 젠더 의식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만큼 인디 신에서 살아남은 여성 뮤지션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편견과 싸우면서 음악을 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들은 어떤 시선을 받아왔으며 어떤 존재들로 해석되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뒤늦게 2000년대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인디 음악계의 여성 뮤지션들에 대해 ‘예쁜’ 표현들과 ‘아름다움’의 기준 속에서 재단하고 이들의 모습을 규제화한 대표적인 단어가 바로 ‘홍대 여신’이다.1) ‘홍대 여신’은 인디 음악 신 또는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들을 부르는 명칭이자 여성 뮤지션들을 대상화하는 말이다. ‘홍대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을 줄여서 ‘홍대 여싱’으로 부르다 그 표현이 변형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홍대 여신’이 10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립 음악 신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여성 뮤지션들을 가로 막았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홍대 여신’이라는 단어는 최근 사용 빈도가 줄면서 사어가 되어가고 있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말은 여성 뮤지션을 외모로 먼저 평가하도록 만든 동시에 ‘청순 가련을 동반한 진부한 어쿠스틱 음악의 동의어’2)로서 여성 뮤지션이 어우를 수 있는 음악 장르를 긴 머리로 기타를 매고 노래하는 어쿠스틱 음악 한 가지로 제한해버렸다.
여성 혐오가 화두가 될 수 없었던 시기부터 ‘홍대 여신’이라는 범주에 묶여있던 뮤지션들은 인디 신에서 활동하면서 스스로 ‘홍대 여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대표적인 ‘홍대 여신’이라고 불렸던 ‘요조’와 ‘오지은’, ‘한희정’은 노력의 결과를 음악과 자신들의 삶 의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요조와 오지은은 직접적으로 자신들이 페미니스트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홍대 여신’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과 혐오감에 대해 직접 이야기한 바 있다. 요조는 데뷔 후 10 년간 그 수식어로 자유롭지 못했고 외모로 많은 평가를 들어왔다고 고백했다.3) ‘홍대 여신’이라는 타이틀은 뮤지션으로서 요조의 정체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이 되었고 그녀에게는 그 명칭에 대해 불쾌할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여신’이라는 명칭은 다양한 여성 뮤지션의 모습을 하나로 압축했으며, ‘여신’은 뮤지션에게 외모와 실력이라는 이중 적인 잣대와 진부할 정도로 고전적인 편견이 내포되어있는 표현이었다. 10 년간 ‘홍대 여신’ 이라는 말을 들어온 한희정 또한 대상화되는 과정에서 예외는 아니었다.4) ‘홍대 여신’ 이외에 도 ‘마녀’로 불렸던 오지은은 여신 또는 마녀의 프레임이 한국 사회가 여성 창작자를 창작자 고유의 인간으로서 봐주지 않고 여성 창작자의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는 의미라고 주장했다.5) 심지어 그는 ‘마녀라고 하시더니 음악이 그렇지 않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고 했는데, 이는 남성 뮤지션들에게는 한정된 수식어가 아닌 아티스트적인 면모에 집중하면서 여성의 목소리에 담긴 진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기울어진 사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홍대 여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활동하지 않은 뮤지션들도 남성과 같은 아티스트로 존중받지 못하고 여성 뮤지션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가득한 상황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4년 10 년차 밴드였던 ‘스토리셀러’는 음악적으로 성장해도 객관적인 평가보다 ‘여자치고 잘하네’, ‘여자들이 제법이네’와 같은 칭찬을 들었고, 가진 것에 비해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 것을 느꼈다고 밝혔다.6) 그런가하면 10년차 가수 제야(Zeya)는 하고 싶은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여자가 가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와 같은 일상적 편견과 늘 싸워야했다고 말하며 그 어떤 편견도 존재하지 않는 음악 환경을 찾아 스웨덴으로 떠났다.7) 쏜애플 밴드의 보컬 윤성현이 오지은의 음악이 여성 뮤지션 치고는 괜찮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을 ‘자궁 냄새 나는 음악’으로 칭했던 사건8)도 인디 신에서의 여성 혐오에 대해 논하기도 전에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 뮤지션들을 폄하하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다수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롤모델로 삼는 영국의 가수 ‘코린 베일리 래’조차 ‘여성 아티스트가 노래를 만들고 곡을 부를 때면 당연히 남자의 도움을 받는 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으며 코린 베일리 래가 녹음 등 사운드 엔지니어의 기술적인 부 분까지 세세히 알고 있는 점에 대해 남자들이 특히 놀랐다고 밝혔다.9)
그렇다면 우리가 인디 신에서 주목해야하는 여성 뮤지션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해답은 인디 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있다. 인디 음악은 주류의 생산/유통 방식으로부터 독립적이면서 음악적으로 주류 장르에 해당하는 장르로부터 독립된 음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성립하기 위해서 인디 뮤지션은 스스로 작업하고 자신의 개성과 창의력을 작품에 담아낸다.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은 모두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작업물을 만 들어내며, 이규탁 교수는 아티스트가 스스로 구축하는 것은 음악뿐 아니라 외적인 이미지 또한 포함된다고 말했다.10) 그만큼 인디 신에서는 자유와 독립, 주체성이 폭넓게 허용된다고 볼 수 있는데 남성들은 이러한 가치들을 방패 삼아 가사에서부터 여성혐오적 단어들을 쏟아내는11) 반면 특정한 모습에 갇혀버린 여성들이 행여나 인디 신에서 강한 독립성을 표출하면 ‘센 여자’라는 또 다른 프레임에 갇혀 평가되었다.
한편, 여성 뮤지션들은 꾸준히 ‘뮤지션’으로서의 주체성을 찾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왔다. 요조처럼 노래 속 가사를 통해 여성이 겪는 여성혐오를 꼬집는가 하면12) 여성 뮤지션끼리 연대를 모색하기도 한다. ‘선우정아’는 여자 뮤지션이란 포지션이 갖고 있는 음악적 이미지적 한계를 지적하며 비브라폰 연주자 마더바이브, 바버렛츠, 강이채 등 또래 여자 뮤지션과 함께 ‘대안포도주장미연합회’라는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13)바로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책임감을 나눠 갖는 연대하는 모임이다.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드러머로서 공연하고 싶다고 이야기 한 드러머는 작년 11월 처음 열린 ‘제 1회 보라 X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했다고 밝혔다.14) ‘보라 X 뮤직 페스티벌은 성폭력, 시선강간, 몰카 걱정 없이 여성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페스티벌로 오지은, 슬릭과 같은 페미니스트 뮤지션의 참여가 돋보였다.
인디 신 내에서 발생하는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한 인지 자체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마땅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여성 뮤지션의 모습이 두드러진 지 20 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폄하를 바탕으로 한 여성 뮤지션들을 향한 시선 또한 쉽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법이 여성 뮤지션의 연대와 이를 지지하는 리스너들의 노력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결국 인디 신에서의 여성 혐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이들이 여성 혐오의 피해자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 구조에서 그렇듯 인디 신에서도 인디 레이블 대표는 모두 남성이고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의 수 자체도 적기 때문에 인디 신에서 발생하는 문제나 여성 뮤지션들을 향한 문제적 시선을 밖으로 꺼내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리스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까지도 오랜 시간 다층적인 모습으로 성장해온 여성 뮤지션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 동안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에 씌워졌던 프레임을 걷어내고 ‘홍대 여신’ 또는 ‘여 성’ 없이도 이들이 뮤지션으로서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기 위해 작업에 몰두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적으로 표현한 그 모습 자체를 편견 없이 들여다보는 일이다.
1) ‘구속되지 않고 흐려지지 않는 여성 뮤지션’ http://poclanos.com/2018/01/08/woman_musician/
2) 이 표현은 뮤지션 야광토끼의 앨범에 대해 ‘여신’이라는 수식어 없이 뮤지션의 앨범을 호평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표현이 여성의 음악을 하나의 장르로 제한하는 것이 잘 드러나는 표현이라고 판단해 이 글에 인용하였다. http://www.doindie.co.kr/en/bands/neon-bunny
3) 페미니즘으로 언어 되찾은 가수 요조 “‘홍대 여신’이 왜 불쾌한 명칭인지 알았죠”
http://www.womennews.co.kr/news/view.asp?num=128865
4) [온스테이지]335th. 편견을 딛고 선 리얼 뮤지션, 한희정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369930&memberNo=6659143
5) [기울어진 극장] ‘홍대 여신’은 혐오다 http://www.womennews.co.kr/news/128852
6) “여자치고 제법이라고? 록음악만 듣고 자랐다”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999221
7) “‘여성’편견 없이 내 노래만 할 수 있으니 행복하죠”
http://v.media.daum.net/v/20180317050104026?f=p
8) 오지은, 쏜애플 윤성현 ‘자궁’ 혐오발언에 일침.. ‘사과문 저격’
https://www.huffingtonpost.kr/2016/03/24/story_n_9536718.html
9) 코린 베일리 래 “여성 뮤지션에 대한 편견과 오해 있다”http://news.joins.com/article/21503646
10) 아이유는 정말 아티스트였을까? http://ppss.kr/archives/60379
11) 인디 음악계는 왜 여성을 존중하지 않나 http://m.ize.co.kr/view.html?no=2016041011397247167 12) 우리에겐 루시라는 친구가 있어요. 찬란한 스무 살이죠. 그녀는 참 예뻐요. 그녀의 입술은 최고급 루비와도 같아요. 그녀의 미소는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당신의 꽃이
아니에요. 그녀는 당신의 베이비가 아니에요. 그녀는 그저, 루시예요. (요조- ‘루시’ 가사 中)
13) 구애를 건네며 시작된 선우정아의 도전
http://www.msbsound.com/%EA%B5%AC%EC%95%A0%EB%A5%BC-%EA%B1%B4%EB%84%A4%EB%A9%B0%EC%8B%9C%EC%9E%91%EB%90%9C-%EC%84%A0%EC%9A%B0%EC%A0%95%E C%95%84%EC%9D%98-%EB%8F%84%EC%A0%84/
14) 놀라셨죠? 네, 여자도 드럼을 쳐요 https://univ20.com/78396
2018.06. by @siwanderlust__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을 브랜딩하는 브랜드 <스페이스오디티>의 비밀을 찾아서 (0) | 2020.02.24 |
---|---|
'앵콜요청금지'를 불렀던 열다섯, '서른'을 듣는 스물다섯 (0) | 2020.02.24 |